호랑이가 사라진 남한에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로 확인됐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14일 밝혔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4년간 원격무선추적과 무인센서카메라, 먹이분석 등을 활용해 멸종위기 2급인 담비를 분석한 결과 담비가 대형동물을 연중 사냥하는 야생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몸길이가 길어야 60cm, 몸무게는 3kg에 불과한 담비는 멧돼지와 고라니 등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대형 포유류도 잡아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담비의 배설물 414점을 분석한 결과 먹이의 8.5%는 멧돼지와 고라니 등 대형 포유류였다.

과학원은 "담비 1무리(3마리)가 연간 다 큰 고라니나 멧돼지새끼 9마리를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담비가 자기보다 큰 포유류를 사냥하는 비법은 담비는 몸집은 작지만 워낙 날렵하고 나무를 잘 타는데다 용맹성도 타고 나 '범 잡는 담비'라는 속담까지 있다.

과학원 측은 담비가 2~3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며 역할을 분담해 멧돼지나 고라니 등을 집단공격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담비에게 공격 당한 고라니의 사체를 분석한 결과 귀와 눈 등 얼굴 부위와 배 부위가 동시에 공격받은 흔적이 발견됐다. 호랑이 같은 맹수처럼 단번에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동시에 공격해 여러차례 물어뜯어 결국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과학원은 포유류 외에 청설모 다람쥐 등 다른 다양한 동물도 잡아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성 먹이가 50.6%였고, 다래와 버찌, 머리, 감 등 식물성 먹이가 49.4%였다.

단일 종으로는 청설모가 5.7%로 가장 많았다. 이는 담비 1무리가 연중 75마리의 청설모를 사냥하는 셈이다. 말벌도 전체 먹이의 2.4%였다.

특히 멧돼지나 고라니는 농작물에, 청설모는 잣ㆍ호두ㆍ밤 등 고소득 견과류에, 말벌은 양봉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담비는 야생동물에 의한 작물피해를 줄이는데도 활용가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담비는 우산종(Umbrella species)으로서 생태계 보전에 활용 가치가 큰 동물로 밝혀졌다. 우산종이란 행동 반경이 큰 동물의 서식지를 보전하면 그 공간 내 다른 종들을 함께 보호해 생물다양성이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옐로우스톤의 불곰, 인도와 러시아의 호랑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선 추적결과 담비의 행동권은 22.3~59.1㎢로, 멧돼지(5.1㎢), 삵(3.7㎢), 오소리(1.2㎢), 너구리(0.8㎢) 등의 행동권에 비해 10~20배 가량 컸다. 어미로부터 독립한 담비 새끼는 40km 이상 멀리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